감정학습

‘ 한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체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글은 사피어 워프의 가설이다. 이 가설이 등장한 후 반대되는 의견도 많았지만 나는 내가 오래도록 생각하던 고민을 관통하는 문장이라 잊혀지지 않았다. 각 언어마다 그들의 문화와 사상이 녹아있고 언어학습의 과정에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배우며 성장하게 된다. 이것은 나라별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더 면밀하게 보면 개개인의 언어학습 과정에 겪게 되는 환경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결국 더 세밀하게 그 차이가 나뉘어 질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는 문화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출하는 것이 어색해졌고 시대의 분위기 상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대상을 만나는 일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언어와 삶의 태도를 배워 왔지만, 무한한 정보와 다양한 환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들어서며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과 불편함이 움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학습되어 진 나’는 이전에 나의 감정표현 방식에 적합하도록 학습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의 충돌은 나를 예술이라는 훨씬 개방감 있는 감정표현의 장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작업 안에서 해소 할 수 있는 나만이 언어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언어라는 제한된 틀 자체를 대신 할 수 있는 요소를 통해 수 많은 감정들을 마주하는 연습을 해나간다면 내가 느끼는 언어 속에 갇힌 듯한 갑갑함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시도와 고민 끝에 내가 찾게 된 적절한 도구는 목소리의 주파수였다. 대부분의 언어들은 서로 소통할 때 목소리를 통해 교류한다. 그 목소리의 주파수는 지문처럼 어느 하나도 똑같을 수 없다. 같은 단어를 말하더라도 형태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개개인이 가진 성대와 호흡 방식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말을 할 때 그 안에 담긴 미세한 감정들은 소리에 영향을 주게 되고, 그로 인해 다양한 높낮이와 모양들이 주파수로 나타난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가족부터 일면식도 없는 지인의 지인까지. 다의적일 수 있는 단어나 문구를 정해 녹음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듣는다. 언제 들어도 그리운 부모님의 목소리에 울컥하기도 하다가 너무나 순수한 무지갯빛 아이의 목소리에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렇게 한명 한명의 목소리는 나의 감정학습의 소중한 선물 꾸러미가 된다. 목소리를 들으며 어릴 적 글쓰기 연습을 하듯 손이 가는 데로 마음껏 써보기도 하도, 미세하지만 다 다른 감정의 결을 찾아가며 무한한 색을 통해 표현해보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외부의 수많은 감정을 마주하고 관찰하며 그것을 형상과 색채로 재표현함을 통해 제2의 감정학습을 해나가고 있다.